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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포 박의 초년병 이야기 (1)
1965년 9월 어느 날 2층 내방에 있는 나를 아버님께서 부르셨다. 안방에 무엇인지 약간 넓고 기다란 두꺼운 종이 박스가 있었다. "이게 뭐예요?" "풀러 봐라!" 생각지도 않은 엽총이, 그것도 한 번도 손때가 묻지 않은 신품 벨기에제 "부라우닝" 5연발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웬 총이예요?" "네 동생은 총이 있지만 너는 없어 하나 장만했다." "이제 애비하고 같이 사냥 다니자!" 제대하고 보니 동생이 엽총을 꺼내 놓고 자랑을 하길 래 (그 시절은 수렵기나 비 수렵기에도 집에서 보관, 외국 영수가 올 때나 가영치(假領置) 했음) 좀 부러운 눈초리로 "넌 참 좋겠다!"라고 하는 걸 들 으셨나 보다. 그래도 그렇지 이 비싼 새 엽총을 사 주시다니..... 너무 황송할 수밖에..... "아버지! 저 새 총 필요 없어요. 중고 총이 더 좋겠어요. 아직 학생이라 돈도 못 벌잖아요." "네 맘 충분히 안다. 애비가 형편이 좋을 때 해주는 거니 편히 받아라." 나는 너무도 행복했다. 하늘로 날라 오를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동생 총은 윈체스타 6연발 중고 총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동생도 내 새총을 너무 부러워해 1년 뒤 똑같은 것으로 사 주셨음.) "열심히 연습 해야지. 아버지한테 실망시켜 드리면 안 된다."고 결심했다. 그리곤 아침에 거총(擧銃) 습 50번, 저녁에도 50~70번씩 꾸준히 정말로 열심히 연습을 했다. 드디어 10월 첫 일요일(그 때에는 10월~ 다음해 3월까지) 첫 출렵(出獵) 날이 온 것이다. "잠 요? 한숨도 못 잤죠. 초등학교 소풍 때 설레임과는 비교도 안되죠. 아무리 자려고 애를 써도 어 찌나 기분이 붕~ 뜨고 흥분, 긴장이 되는지 잠이 와야죠." 그냥 날밤을 새운 것이다. 대흥총포사(신당총포 전신: 고 김건철 선배엽사님 운영)에 당도하니 아버님 친구분들과 여러 회원님 들께서 삼부자 엽사(獵師: 사냥꾼)가 탄생했다고 야단들이셨다. 축하와 격려를 받으니 어깨가 으쓱거려졌다. 엽장(獵場)은 충남 광천이었는데 그 때엔 동생은 시험이라 못 가고 나만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엽장에 도착하자 사냥은 이렇게 하는 거다, 개가 수사할 때는 어떻게 하라, 또 포인(pointing:꿩이 있 다고 가르쳐주는 동작)할 때는 이런 방향으로 서야 한다, 등등 설명을 들으며 사냥에 들어갔다. 한참을 다니다 보니 개가 아주 높은 나무가 많은 분지로 올라갔는데 내려오지 않는 것이다. 불러도 소식이 없다. 그 분지가 높고 험해 아버지는 오르시기가 부담스러우신 듯 "네가 올라가 봐라!" 하시어 간신히 올라 가 보니 넓은 분지(3, 4백 평쯤)가 있는데 그 한가운데서, 어랍쇼? 생전 보지 못했던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 개 "럭키(잉글리쉬 포인터)"하고 장끼하고 대결이 벌어졌는데 장끼는 벼슬 옆 머리털을 곤두 세 우고 금방 쪼아 버릴 기세로 날개를 퍼덕거리며, 개가 일보 전진하면 일보 후퇴,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좌로 우로 빙~ 빙 돌고 있었다. 이 두 놈들은 내가 올라온 지도 모르고 서로 벼르고만 있길 래, "럭키! 물어!"라고 소리치니 그때서야 장끼가 도망치는데 따라가는 개 때문에 총을 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꿩이 분지가 끝나는 데서 퍼드득 솟아올랐다. 얼결에 개가 맞으면 안 되니까 좀 위로 "탕!" 다음엔 나무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얘야! 잡았느냐?" "아니요!" "그럼 빨리 내려와라!" 막 돌아서려는데, 아! 하늘에서 푸드덕 푸드덕거리며 꿩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내가 쏜 꿩인지 그냥 날아가다 죽은 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개 "럭키"는 꿩을 덥석 물어 아버지한테로 가지고 가 버렸고..... "못 잡았다고 하더니 어떻게 된 거니?" "저도 모르겠어요" 그리곤 상황 설명을 해 드렸더니. "네가 쏜 게 머리가 맞은 모양이다. 오늘은 사냥꾼도 많이 왔는데 공치는 것 면했다." 하시면서 마냥 즐거워 하셨다. 너무 힘들어 한참 쉬었다가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버지보다 내가 주력(走力)이 좋으니까 큰 뽕밭으로 먼저 들어가니 약 30m 전방에서 장끼 란 녀석이 "꽈드등!!!" 미리 나는 것이 보였다. 너무 급해 조준할 새도 없이 "들어 뻥(재빨리 쏘는 행위)"을 했다. 근데 요놈이 하늘로 치솟는 거였다. "너 어디로 도망가느냐?"는 생각에 "탕! 탕! 탕!" 세 발을 연거푸 더 쏘았다. "쏘지 마라! 그만 쏴라!"는 아버지 음성이 들리는 듯 했지만 꼭 잡을 욕심에 떨어질 때까지 쏘아댔던 이다. 까맣게 높이 솟아올라 참새만큼 보이더니 서서히 땅으로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어찌나 신바람이 나던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머리를 맞으면 곧장 하늘로 솟아오른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버스에 오르니 일제히 환호성이 터졌다. 형만한 아우가 없다더니 동생도 잘 쏘는데 형은 장끼 두 마리에다 그것도 머리만 명중시켰으니 동생 보다 더 명포수(名砲手) 될 자질이 있다나..... 그것도 버스에서 장끼 두 마리 잡은 사람은 나 혼자라 우승상도 탔다. 여러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원장님! 축하합니다!"하니 아버지께서는 너무 흡족하고 대견해 하셨다. 나는 "뭐 사냥이 별거 아니구나!" 이런 건방진 생각을 하면서...... 이 건방진 생각이 그 뒤 나를 많이 괴롭혔고 많은 골탕을 먹은 후에야 겸손해야 됨을 깨닫게 되었다. ( 계 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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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땐 땡포 박이 초보 때라 날면 자신이 없어서, "아버님! 뒤로 10m 쯤 물러서 계세요. 제가 쏠게요." 사냥 이론에 그렇게 밝으신 선친께서도 도통 믿기지 않으신 듯 다시, "얘! 너 뭐 잘못 본 것 아니냐?" 물러서질 않으신다. "저 쏠래요!" 이젠 다치실까 봐 물러서지 않으실 수가 없었다. 정조준 했다. 군대에서 배운 식으로 올려놓고 쏘다가 실수한 적이 있어 묻고 쏠 준비를 했다. 어! 그런데도 날지 않으니 이상했다. 다시 거총(擧銃:총을 쏠려고 겨냥하는 모습)을 조금 풀고 또 자세히 살폈다. 틀림없는 장끼다. "꽝!!!" 계곡이라 크게 울리는데, 쭉 퍼져 굴러 떨어지는 게 틀림없는 꽤 묵은 장선달님이시다. 펄떡! 펄떡! 뛰는 모습이라니..... 그 때서야 철저히 속으신 선친께선 활짝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하다. "야! 어떻게 감쪽같이 속을 수가 있지? 풀도 하나도 없는 빤빤한 진흙 사태가 난 곳에 엎드려 있었 는데..... 허! 허! 참 그게 꼭 진흙 덩어리로 보이더라!" 그 날 두 부자는 그 한 마리로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는 엽행(獵行:사냥길)이 되었다. 이 엽행이 그 뒤 선친 사냥 친구들과의 화제로도 많이 등장했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이 땡포 박은 충청남북도, 경북, 전북 쪽에 사냥을 가든, 낚시를 가든 그 옛날 선친을 뫼시고 다니던 추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라 몹시도 그리워질 때가 많다. 선친께 받은 사랑과 위대한 유산이 바로 이 야외에서 호흡하는 "사냥과 낚시"임을 깨달을 때 "아! 나는 참 복도 많고 행복한 사람이구나!"를 늘 느끼곤 한다. 너무도 멀리 계신 아버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제 곁을 떠나신 지도 오래 되었건만 자꾸만 자꾸만 더 그리워짐을 어쩔 수 가 없습니다. 너무도 그립습니다.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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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잘려진 개머리판 -- 그리운 아버님 1962년 입대 후 처음으로 휴가를 나왔다. 아버님께서 장농을 여시더니 여지껏 한 번도 구경해 보지도 못했던 엽총을 보여 주시는 것이었다. 스페인제인데 글을 읽을 줄 몰라 엽총이름도 모르신다는 것이다. 총포 소지허가증에도 스페인제로만 되어있고 총명엔 빈 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딕체로 "에이바 벨롯타" 라고만 쓰여져 있어 "에이바" 회사에서 만든 "벨롯타"인 것 같다고 말씀 드리니 흐뭇해 하셨다. 엽총을 처음 보는 것이지만 말씀 그대로 고급 엽총같이 보였다. 액션부분(기관 부분)은 싸이드 락(sidelock)에 조각도 꽃무늬로 장식이 되어 있는데 천연색으로 꽤 화려하고 멋있게 착색이 되어있었다. 선친께선 또 "이 총이 꽤 비싼 건데 나만 쓸려고 산 게 아니라 다음에 너에게 물려주려고 좋은 총을 샀으니 그리 알아라!"하시면서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 하시는 것을 보고 귀대했다. 얼마 후 제대하여 보니 그 엽총이 선친 고향후배이자 사냥선배인 황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개머리가 2cm나 잘려 있었다. 아마 그 분은 체격은 좋았으나 팔이 많이 짧았었던 듯 자기 팔이 표준인 줄 알았나 보다. 내가 견착(肩着:총을 겨냥하려고 어깨에 대는 행위)을 해 보니 총구가 위로 뜨는 것이다. "아버님! 개머리판을 왜 자르셨어요? 겨냥이 안 되는데요?" 아주 총을 병신으로 만드신 것이다. 하여튼 그 총으로 꿩이 잡힐 수가 있나? 떨어졌다 하면 그건 후로쿠(요행)이었을 것이다. 제대 후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선친을 모시고 사냥을 따라갔었다. 선친께서는 늦게 입문하셔서 총을 쏘시는 실력이 별로신지라 꿩은 한 마리라도 가지고 가셔야 체면이 서시는지 총이 없이 따라온 일동에 사는 박씨 성을 가진 직업포수에게 그 명총(名銃)을 주어 대신 사 냥을 하게 하셨는데 몇 번 불질(총질의 옛말)을 해도 맞지 않는 것이다. 무슨 명포수(名砲手)가 명총(名銃)을 가지고도 꿩도 못 잡는가 하고 주위 엽사(獵師: 사냥꾼)들에게 책망을 받았는데 총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이상하다, 가늠이 안 된다만 했으니 얼마나 한심스러웠던가? 이 땡포 박이 아무리 어려도 그래도 육군에서 과학적으로 훈련을 받았는데 총이 개머리가 짧아서 겨 냥이 안 된다고 말씀을 드려도 듣질 않으셨다. 한 번은 사냥을 가시는데(겨울 방학 끝나는 2월 하순 경) 나도 수통을 차고 짐꾼으로 따라갔다. 2월인지라 좀처럼 꿩을 만날 수가 없었다. 오후 4시쯤 되니 너무 힘이 드시는지 네가 가지고 다녀라 하시면서 총을 건네 주셨다. "이런 논두렁에서도 가끔 꿩이 날기도 하는데..." 하시면서 뒷짐을 지시며 내 뒤 옆으로 따라 오셨다. 정말로 꿩이 그 말씀을 알아들었는지, 말씀이 끝나자마자 내 뒤에서 "꽈드등!"하며 별안간 시뻘건 묵은 장끼가 뜨는 것이다. 한 40도 각도로 곧장 날아 올라가는데 생전 엽총을 쏴 보지도 못한 나는 순간 놀랬지만 돌아서자마자 대충 꿩 만 보고 "꽝!". 아! 그런데 그 꿩이 푸드덕! 푸드덕거리며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선친께선 "야! 네가 군대를 갔다 오더니 정말 제법 총을 잘 쏘는구나!" 하신다. 지금 생각해보면 올려놓고 쏴(군대 M1 소총 PRI 훈련 때 얻은 습관: 이 버릇을 고치느라고 무척 고 생했음) 분명 꿩 꼬리나 쐈을 것인데 개머리가 짧아 총구(銃口)가 위로 겨냥이 되었으니 명중이 될 수 밖에.....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다음해 대학졸업 선물(?)로 부라우닝 5연발 신품으로 사 주셨다. 하여튼 이 선친 명총은 날치기는 잘 안되고 복치기(앉은 새를 쏘는 것)만 되는 불량엽총으로 전락을 하게 된 것이다. 선친께선 총도 무겁고(3.4kg) 또 잘 맞지를 않던 중 그 당시 선친께 늘 신세를 지던 최두열 치안국장 (지금 경찰청장: 그 당시는 위세가 대단했음)이 직접 일본에서 수입한 미국제 윈체스터 3연발 모델 53 스틸 화이바 그래스(12ga. 3kg, 스페인 명총은 3.4kg)를 선물로 받으셨다. 그 때는 그 총이 제일(?) 가벼운 것으로 알았다. 이 총을 가지시고 사냥을 하시는데 30%이상 꿩을 떨어뜨리시니 얼마나 기분이 좋으신지 그 때서야 스페인제 명총의 개머리를 잘못 자르신 것을 깨달으시게 되었다. 이제 후회한들 무엇 하겠는가? 또 가끔 외국 대통령이나 수상이 방한(訪韓)할 때면 관례상 엽총을 경찰서에 영치(嶺置)해야 되는데 꼭 파출소 직원(순경)들이 찾아 갔다. 또 어디서 말씀을 들으셨는지 영치시키다 분실할 염려도 있고 총이 녹슬거나 망가질 수가 있다고 해(꽤 비싼 명총이라고 호기심에 만져 보다가) 일본제 SKB 엽총을 사셔서 멋있는 꽃무늬로 조각하여 각인을 다 지워 버리고 스페인 총과 똑 같이 총 번호, 조각, 문자를 새겨 넣어 가짜 스페인 총을 영치 시키고 진짜 스페인 명총은 동생과 나만 알게 안방 천정에다 잘 숨겨 두셨다. 그리고 다음에 네가 쓸 때 다시 수리를 하라 하시고 절단된 개머리 조각을 나에게 주셨다. 이 명총이 1972년 수렵이 끝나고도 계속 금렵이 되는 바람에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심심하면 불법총기를 신고하라고 엄포를 놓는데 연세가 드실수록 마음이 약해지시는지 늘 불안해 하셨다. 매번 마지막이라고 또 신고하면 책임을 묻지 않고 허가도 내주겠다고 TV만 틀면 나오니 점점 불안하 여 노이로제 증상까지도 생기셨다. 할수없이 내가 그 스페인 명총을 들고 성북경찰서로 출두하니 담당자는 물론 과장까지도 모두 놀라는 것이다. 어떻게 조각의 문양이 똑 같을 수가 있느냐고..... 그러면서 한 가지 이름으로 엽총을 두 개로 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거다. SKB 엽총을 다시 스페인 글씨와 문양을 지우고 다시 원래의 일본제로 만들어오겠다니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 여지껏 불법무기 캠페인은 왜 했느냐고 아니면 청화대에 가서라도 따지겠다고 거칠게 나오니 과장이 웃으면서 해 오란다(그 때에는 엽총가진 사람은 꽤 대우를 받았음. 돈 있고 빽이 든든하리라 믿었기 때문. 더군다나 치안국장이 선물한 엽총도 있었으니까). 이젠 그런 장인(匠人)들은 다 이 세상 분들이 아니시겠지만 워낙 일이 없던 터라 일금 2천원에 영자 글자를 그림으로 조각해 다시 지워 버리고 빈칸에 SKB와 Made in Japan을 기가 막히게 다시 새겨 넣는 것이 아닌가? 그 훌륭한 조각솜씨에 너무도 놀랐다. 수고가 많았다고 5천원을 건네니 감사하다며 너무 좋아 쩔쩔 매는 것이다. 이 문자를 개조한 엽총을 경찰서에 가져오니 또 모두들 놀란다. 하여튼 이렇게 해 엽총 한 자루가 더 생겨 막내 동생에게 물려 주셨다. 지금은 그 총을 이 땡포 박 막내아들에게 또 물려주었지만... 또 스페인 명총은 큰아들에게 물려 주었 고..... 새로 장만하신 윈체스타 엽총으로 한참 재미를 붙이셨는데 그만 박정희대통령시절 유신이후 73년부터 그만 금렵이 되어 버렸다. 처음엔 자연생태보호로 한 해만 금렵한다는 것이 두 해, 세 해 계속 금렵이 되었다. 애타게 급렵 해제(禁獵解濟)를 기다리시다, 기다리시다 못해 엽기를 다시 개방하기 1년 전 1981년 먼 세상으로 떠나셨다. 1년만 참으셨으면 다시 한 번 그렇게도 좋아하시던 사냥을 해 보시고 가셨을 터인데..... 지금도 1966년 경기도 이천 고향 근처에서 선친을 뫼시고 사냥을 하던 생각이 난다. 선친께선 길을 따라 가고 계시고 나, 땡포 박은 선친보다 오른 쪽 20m 떨어진 논두렁을 지나가고 있 데 선친 왼쪽 산비탈 진흙 위에 커다란 장끼가 엎드려 있는 게 보였다. "앗! 아버님! 아버님 왼쪽 10m 앞에 장끼가 있어요!" "어디? 안 보이는데...?" 어라! 풀이 한줌도 없는 진흙 위에 큰 장끼가 납작 엎드려 있는데 안보이시다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되었다. "얘! 꿩이 어디 있니? 너 무얼 잘못 본 것 아니니?" 참, 이상하다. 풀이 있으면 몰라도 빤빤한 진흙 위에 까투리도 아니고 장끼를 못 보시다니....? 나도 혹시나 하여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았다. 틀림없는 장끼다. 그래도 욘석은 날지 않고 있다. 그 땐 땡포 박이 초보 때라 날면 자신이 없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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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땡포 박의 아버지, 故 박용구엽사님 선친께서는 1914년 11월 24일(음) 경기도 이천시 율면 고당리에서 중농의 6남매 중 맏이로 태어 나셨다. 어려서 15, 6세 때 힘이 장사라 나이가 더 많은 동네 청년과 씨름을 겨루다 마루에서 굴러 떨어 지셨단다. 마루에서 돌계단으로 또 마당으로..... 너무 크게 다치시어 유명을 달리하실 줄 알았다가 3년간 투병 끝에 극적으로 목숨을 건져 건강은 찾으셨으나 한쪽다리가 짧은 불구가 되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의사가 되어 보겠다고 10여 년간을 한의학에 몰두하더니 마침내 침술의 대가가 되시었 다. 종로 4가에 박용구한의원을 개원하시어 동생에게 물려주실 때까지 거의 40년을 한 자리에서 진료를 하셨다. 침술의 권위가 있으심에도 또 많은 환자에게 시달림을 받으시면 서도 침술과 한의학에 관한 책자는 늘손에 달고 계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명성이 전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하루에 300명 이상 환자를 담당하시게 되자 건강을 염려하여 낚시 동료의 적극적인 권유로 1962년(48세)에 드디어 수렵계에 입문하셨다. 좀 많이 늦은 입문이셨지만 낚시보다 더 좋아하셨고 63년엔 한의과 대학 다니는 동생에게 (나는 군 복무 중이었음), 65년엔 이 땡포 박에게까지 엽총을 사 주셨다. 결국은 막내아들에게 까지도..... 원래 인자하고 꼼꼼하고 준비성이 많으셔 엽총의 손질, 보관엔 철저하셨던 생각이 난다. 몸이 불편하여 걸음이 좀 늦으셔서 그렇지 사냥하실 때 별 애로는 없었다. 그러나 남들은 그런 체력과 불구의 몸으로 어떻게 사냥을 할 마음이 생기셨는지 대단하다고 말들을 하곤 했다. 워낙 늦게 입문하셔서 불질(총질)은 잘못 해서 비록 꿩은 많이 못 잡으셨으나 꿩 사냥 이론엔 누구도 따를 사람이 없었다. 어디에 꿩이 많이 붙을 지를, 또 떼 꿩이 있을 만한 자리를, 산과 들판을 오전과 오후에 어떻게 누벼야 될 지를, 얼마나 또 어떻게 많은 연구와 관찰을 하셨는지 훤히 알고 계셨다. 한번은 동생과 같이 삼부자(三父子)가 공렵(共獵: 같이 사냥하기)을 하였을 때다. 1969년 2월경 충북 괴산군 장연면에서 오후 4시가 넘었는데 장산을 낀 동네 앞 얕으막한 야산을 동 생과 함께 올라가 보라신다. 우리들은 지치기도 했고 저런 야산에 뭐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아버님의 분부라 거역도 못하고 마지못해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개도 지쳤는지 수색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다가 잔솔포기만 듬성듬성 있어 동생더러 여기에 무슨 꿩이 있겠느냐"며 총을 지게작대기를 메듯 양 손으로 어깨에 걸쳐 메고 앞으로 나아갔다. 동생도 힘든지라 나하고 똑 같이..... 그러나 웬걸! 개가 냄새를 다는가 싶더니 떼 꿩 7, 8마리가 일제히 떠올랐다. 들쳐 메고 있던 총을 재빨리 내려 쏘려니 이미 늦었으나, 두 형제가 일제히 3발씩 "탕! 따당! 따당!탕!" 불을 뿜었으나 한 마리도 떨어진 것은 없었다. 우리 두 형제는 서로 마주 쳐다보고 멍하니 얼빠진 사람같이 넋을 놓고 있었을 뿐..... 선친께 꾸지람 들을 일이 걱정이 되었다. 내려오니 밝으신 얼굴로 "몇 마리나 잡았느냐?" 우린 머리만 극적 거리며 자초지종을 말씀을 드렸더니 웃으시면서, "얘들아! 그렇게 사냥을 따라 다니면서도 어디에 꿩이 붙을지 모른단 말이냐? 그리고 애비가 분부를 내렸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총이 지게작대기냐?" 부끄럽기도 했지만 화를 내시는 것보다 더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그리고 봄이면 꿩이 너무 약아져 우리의 이동을 미리 알고 사냥꾼이나 개가 눈치 못 채게 일찌감치 반 대쪽으로 몰리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1970~1972년엔 내 사업을 정리하여 아내가 하는 약국에서 셔터맨(문만 내리고 올리는 사람) 신세라 시간이 많이 남아 선친을 모시고 늘 사냥을 다녔다. 선친 자가용 승용차로 지금은 다 돌아 가셨지만 이두병, 최경록 양 회장님과 공렵을 했다. 첫째 주와 셋째 주는 동생과 공렵이었고 그 나머지 주는 두 회장님과 출렵(出獵: 사냥가기)을 했었다. 내가 아무래도 젊어서 주력(走力)도 좋고 연습을 많이 한 관계로 늘 꿩을 많이 잡았다. 그 꿩을 배분하는 데도 서로 똑같이 나누셨고 남으면 우리가 한 마리 정도 더 가질 정도로 하셔 서로 공평하게 했다. 또 조금이라도 더 큰 꿩을 친구 분들에게 주려고 애를 쓰신 기억이 난다. 이것이 금렵 후 1983년서부터 서부총포에서나 신당총포에서도 내가 잡은 꿩을 제일 많이 내놓는 본 보기가 되었고 양쪽 총포사에서 꽤나 사랑(?)을 받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늘 좋은 엽장(獵場: 사냥터)을 할애 받곤 했다.
하여튼 선친께서는 건강엔 사냥이 제일 좋다 하시며 우리 3형제에게 엽총을, 그것도 신품으로 다 사 주셨으니 이런 분은 이 세상에서 우리 아버지 "박용구엽사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사냥을 지극히도 사랑하시던 분이 금렵이 끝날 때를 학수고대하시다 금렵이 끝나기 1년 전인 1981년 1월 20일(음) 지병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 동안 사냥을 하게 되면 아들들과 함께 쓰신다고 엽탄(獵彈: 사냥 총알)을 얼마나 많이 장만하셨는지 우리 두 형제가 10년을 쏴도 남았었다. 지금도 충북이나 충남 수렵지구에 가면 선친을 뫼시고 사냥을 하였던 생각이나 옛일이 그리워지곤 한다.
나는 선친께서 사 주신 엽총이, 수렵을 가르쳐 주신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큰 위대한 유산이라고 늘 자부하고 있다. 따라서 나도 두 아들에게 선친께서 물려주신 엽총을 다 나누어 주었다. 앞으로 간절한 소망은 이 두 아들과 아내 정포수와 같이 공렵을 하게 되는 것이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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