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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썰렁했던 엽기를 끝내고 (2006년 2월 25일, 26일 사냥 이야기) 2005년 엽기는 시작 초부터 Apec회담 때문에 21일이나 날아가 버리더니 내가 선택한 함 평에 4주간 폭설(暴雪)로 애총(愛銃)만 함평서 중앙지구대에 한 달 동안 감옥살이를 시켰고 또 다시 1주일 계속된 눈으로 한 주를 놓치다 보니 사냥을 한 건지 안한 건지 도대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거기다가 치욕적인 오발(誤發)사고까지 저질렀으니 이 땡포 박은 너무도 한심한 엽기를 보낸 셈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너무도 값진 경험을 한 일이 세 가지나 있으니 사냥을 못했어도 의미가 깊었던 엽기가 아니었나 보다. 모두가 인터넷 수렵 동호회에서 만난 분들인데, 첫째는 후렌치 부리똥 "폴"을 분양해주신 동년배인 "frlove" 김성주님을 만나 같이 공렵을 하고 술도 두 번이나 하면서 푸짐하게 정담(情談)을 나눈 것이요, 둘째는 광주 나병수님과의 점심식사와 잠간이지만 공렵, 셋째도 광주 이승연님과의 점심식사와 공렵이 바로 그것이다. 아쉽게도 세 번 공렵에 꿩은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지만 비록 초면이라 할지라도 엽우 간의 훈훈한 우정을 느끼게 해준 것이 나에게는 크나큰 행복이었다. 1. 2월 25일(토) 흐림 손불면에서 아내, 박상무와 나 셋이서 사냥을 하고 있는데 광주에 사시는 이승연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함평에 사냥하는 중인데 같이 점심을 할 수 있느냐고. 흔쾌히 승낙. 해보면 소라식당에서 만났다. 그런데 나병수님도 건장한 체구였는데 이 이승연님도 만만치 않았다. 맛있는 식사와 반주도 들고 의기투합, 해보면에 내 단골 엽장(獵場)으로 안내를 했다. 실은 내가 안내를 받을 입장이나 꿩 여러 마리를 볼 수 있는 자신이 있었음으로 내가 안내를 맡은 것이다. 어~라!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논에는 꿩이 놀고 간 자리는 많았는데 한 마리도 만날 수가 없었다. 누가 오전 중에 치고 나간 것이 틀림이 없다고 생각되는데, 우리 앞쪽 500m에 사냥차가 있다는 최기사의 제보.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곳으로 옮기도 어렵고 혹 빼먹은 데가 있을까 하여 샅샅이 뒤졌으나 까투리 한 마리가 나는 것을 본 것 이외는 하나도 만나지를 못했다. 코스가 거의 끝나는 무렵, 어랍쇼! 둔덕 아래 큰 나무 왼쪽에다 우리 개 "리키"와 "폴"이 포인을 하지 않는가? 이승연님을 보니 멀리 떨어져 계셨고 박상무보고 나무 밑으로 내려서서 소리를 지르라고 싸인(sign)을 보냈다. 꿩을 나무 왼쪽으로 날려야 내가 쏘기 쉽지, 오른쪽으로 나르면 나무 가지에 가려 불질하기가 어렵기 때문 이었다. 그런데 박상무가 너무 긴장한 탓인지 내가 아무리 싸인(sign)을 보내도 알아차리지를 못한다. 할 수 없이 내가 "들어가!" 아니나 다를까 장선생이 뒤로 빠져 나무 오른쪽으로 나간다. 겨냥을 하려는데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간다. 아마도 이승연포수를 의식한 듯? 하다. 그래도 나무 가지 뒤로 빠지면 안되기 때문에 재빨리 속사, "탕!" 나무 가지 속에다 "탕!", 박상무도 "탕!탕!" 장서방은 유유히 용용 죽겠지 하며 "날개야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을 치니 축포만 쏜 꼴이 되었다. 산 중턱에 계신 이승연님의 격양된 목소리 "어 허!" 너무도 아쉬워 속상해 지르는 소리 같았다. 그야말로 땡포 박이 확실한 땡포가 되는 순간이었다. 어찌나 창피하고 부끄러웠던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제 이승연님과 헤어 질 시간이다. "오늘 참 즐거웠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뚜벅! 뚜벅! 자기 차로 가더니 꿩 한 마리를 내미는 것이다. 오전에 한수(首: 한 마리) 했다고..... "난 남에게 꿩을 준적은 많지만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창피해서 받을 수가 없네요. 아까 그 장끼를 꼭 잡아 드리려고 했는데....." 막무가네다. "아! 이것이 끈끈한 우리 엽우의 우정이구나."하고 생각하고 받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생전 처음으로 그것도 초면에 꿩을 받은 나, 땡포 박! 이승연 후배님! 고맙습니다. 여지까지는 주는 즐거움만 알았는데 훈훈한 정이 깃든 받는 즐거움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가르쳐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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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짜리 "폴"의 수중 운반 애견 ‘리키’의 원망 몇 년 전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 한 토막. 아랫마을에서 씨받이 할 돼지를 보내 달라고 해서 손수레에 싣고 갔다 온 다음 날 그 돼지가 없어졌 다.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혀 찾느라고 소동이 났는데, 물론 축사에도 없고 갈만한 곳을 다 찾아 봐도 도저 히 찾을 수가 없었단다. 포기하고 우연히 헛간에 가보니 손수레 위에 떡 버티고 앉아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더란다. 이 미련한 돼지도 "손수레만 타면 또 씨받이 하러 가는 줄 알았나 보다" 하는 말을 듣고 박장대소한 적이 있었다. 지난 3월 22일 오후 애견 ‘리키’와 ‘폴’ 두 마리 중 ‘리키’는 베테랑이기 때문에 ‘폴’만 데리고 훈련을 나갔다. 자기를 안 데리고 간다고 ‘리키’가 얼마나 짖어 대는지 좀 안스러웠지만 혼자서 두 마리 훈련시키는 것도 힘들고 ‘폴’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하나만 끌고 나섰다. 팬더 후배님 이야기를 듣고 시화호 상류 송산면 고정리 쪽인데 지도를 보고 공룡알 화석지를 더듬더 듬 해서 찾아 갔는데 정통으로 만났다. 여기는 농약을 안 놓은 듯 제법 꿩이 많았다. 한 번은 ‘폴’이 포인(pointing)을 했는데 도무지 날지 않는 것이 꽤 개와 가까운 곳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지팡이로 한 50cm 밖에 안 되는 쑥대 풀을 치는데도 꼼짝도 않는다. ‘폴’과 2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지팡이로 휘두르는데도 날지 않아 ‘폴’이 잘 못 포인 한 것이 아닌가 하 고 허리를 구부리는 순간, "꽈드등!!!". 너무도 큰 소리를 내면서 늙은 장 선달님이 내 코앞에서 뜨는데 여간해서 놀라지 않는 이 땡포 박도 이번엔 굉장히 놀랬다. "허! 허!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는 나를, 이 땡포 박을 겁을 주다니... 맹랑하네!" 훈련을 마치고 들어와 옥상에서 두 개를 데리고 개집으로 쓰는 2층 빈 사무실로 들어오자니 ‘리키’ 가 별안간 두 개가 공동으로 쓰는 개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훈련 다닐 때 쓰는 작은 운반용 켄넬로 들어가 결코 나오지 않는 것이다. 마치 "나도 사냥 좀 데려가 줘요!"하는 표정이다. 얼마나 웃기는지..... 얼마나 가고 싶으면 그토록 샘이 났을까? 다음 날 박 상무가 그 자초지종을 듣더니 배를 쥐고 깔깔 웃었다. 또 다음 번 3월 29일 또 ‘리키’는 집에 두고 ‘폴’만 훈련시키고 돌아와 보니 ‘리키’는 자기 개집에 있길래 같이 집어넣으려고 문을 여니 후닥닥 ‘리키’가 튀어 나갔다. 또 ‘폴’도 따라 나갔다. 나는 당연히 옥상으로 올라 가 있는 줄 알고 올라가 보았으나 ‘폴’만 있고 ‘리키’는 어디에도 없었다. 급히 옥상에서 내려와 ‘폴’을 개집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와 보니 이 ‘리키’가 떡~ 하니 사냥차 뒷문에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나도 사냥가고 싶어요!" 하는 것처럼. 이층 개집으로 데리고 올라 가면서 ‘리키’하고 약속을 했다. "‘리키’야! 다음부터는 너도 꼭 데리고 가마! 미안하다!“ 다시 4월 2일 아내 정포수와 박 상무 셋이서 ‘리키’와 ‘폴’을 둘 다 데리고 훈련을 나갔다. 아내 정 포수도 "여보! ‘리키’도 서운하지 않게 같이 훈련 시켜요. ‘리키’가 말은 못 해도 당신이 얼마나 원망스럽겠어요?" 맞는 말이다. 또 빨리 ‘폴’을 명견을 만들기 위해 ‘리키’는 쳐다보지도 않았으니 얼마나 서운했을까? 그러나 이제는 ‘폴’이 ‘리키’한테 뒤지지 않는 것 같았다. ‘리키’가 먼저 포인! ‘폴’도 포인 하는가 싶더니 뜬 내(high nose)를 하며 왼쪽으로 내 달린다. 약 30m 쯤 추적하더니 드디어 포인, "들어가!" 장 선달 한 녀석이 사뿐히 난다. 또 좌우로 냄새를 달며 분주히 움직인다. 또 포인! “야! 아까 그 꿩인데, 뭘 그래?” 어! 또 난다. 두 마리다. 이때서야 겨우 찾아온 ‘리키’. 어느 틈에 ‘폴’이 ‘리키’를 앞서는 순간이다. 이제는 내가 아니더라도 ‘리키’가 ‘폴’한테 되게 열 받게 되겠군. 그래도 서로 다정하게 선의의 경쟁을 시키고 싶다. ‘리키’야!, ‘폴’아! 나는 아니 우리는 너희 둘을 다 똑같이 사랑한단다. 다만 ‘폴’이 어리니까 집중적으로 훈련시키는 거란다.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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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를 타고 지난번 이틀 사냥하다 장끼를 다리와 몸만 맞춘 곳으로 이동. 혹시 아직 그 꿩이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며 찾아보겠다고 박 상무는 덤불 위 산 초입 쪽으로 가고 나는 중간 가시덤불이 많은 곳으로, 동생과 노 선배님은 아래 밭쪽을 맡아 치고 나갔다. 나는 가시덤불이 너무 많아 쩔쩔매었고 앞으로 가기가 어려워 박상무 쪽은 나갈 수 있느냐며 소리쳐 묻는 순간 오른 발이 푹 빠져 앞으로 넘어졌다. 양 손에 총을 잡고 거의 다 일어서는데, "꽈드등!!!" 내 앞 45도 오른쪽 15m쯤 되는 곳에서 또 장선달이 날라 뒤로 빠지는 게 보였다. 일어서면서 장선달 쪽으로 총을 대니 리드할 시간이 없어 1m 앞에다 "탕!" 어~라! 얼마나 재수 없는 녀석인지 정통으로 맞아 떨어진 같았다. 혹시나 하여 "리키"도 "폴"도 불렀는데 가시덤불이 거세서인지 쉽게 빠져 나오질 못하는 모양이다. 어라? 떨어진 점을 찾아 가니 꿩이 안 보인다. 원래 떨어진 뒤 3, 4초안에 개가 와야지 선불 꿩을 회수하기 쉬운데 아무리 불러도 개들은 빨리 오지 않고 답답하기만 하다. 열심히 찾고 있는데 동생의 고함소리, "형님! 명중 되었어요. "하우찌(선불 꿩)" 아녜요. 다시 잘 찾아보세요!" 그러나 원래는 덤불이 꽉 차 있던 곳이지만 지금은 그 동안 많은 눈으로 맨 바닥같이 되어 있어 찾기 쉬울 터인데 영~ 꿩은 보이질 않았다. 이윽고 두 개가 다 왔는데 "폴"은 아직 미숙하고 "리키"가 줄 내를 하다가 안되겠는지 라운딩(rounding: 수색하기 위해 원을 그리는 것)을 시작한다. 두 번째 라운딩에 어? 떨어진 예상지점에서 20m 뒤 내가 고생하던 그 가시덤불 초입에다 포인을 하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장선생이 거기에 고개가 꺾혀 웅크리고 있었다. 회수해 보니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도대체 모를 일이었다. 꿩은 죽는 순간에도 자기 몸을 감추는 기막힌 숨는 기술을 가진 것이 또 증명된 셈이다. 점심 식사하는데 아내 정포수한테 전화가 왔다. "여보! 잡았어요? 몇 마리나요?" "장선달 두 마리요! 그 동안은 마누라한테 너무 주눅이 들어 기를 못 펴서 그랬나? 오늘은 아니네! 그런데 당신이 없으니 디카도 없고 서운하네!" "내가 없어 서운한 거예요? 카메라가 없어서 서운한 거예요? 호 호 호... " "카메라는 옷 가방 속에 넣었어요!" "알았어요. 잘 안 찍히면 있다 물어 볼게요!" 점심식사 후 동생이 엽기초반에 떼 꿩이 일어난 곳으로 가자고 해서 대동면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고추밭, 논, 콩밭, 비록 폭설(暴雪)로 쓰러졌지만 갈대와 대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꿩이 붙기 썩 좋은 명당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다 뒤져도 한 마리도 안 나온다. "어~랍쇼?" 오래 묵은 과수원을 지나다 보니 논 위 산 초입에다 "리키"가 포인을 한다. 박 상무는 산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노배님은 내 오른 쪽10m 뒤에, 동생 박원장은 너무 힘들다고 차안에 앉아 있고..... "들어가!" 조금 따라 가더니 다시 포인! "들어가!" 안 들어간다. "자식! 되게 겁이 많네! 박 상무! 개 좀 들여보내요!" "들어가!"하고 소리를 지르며 박상무가 앞으로 뛰니 "꽈드등!" 묵치(묵은 녀석)가 나가는데 욘 석이 갈지 자(之 字)를 크게 그리며 난다. 순간 못 잡으면 되게 망신을 당하겠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친다. 침착하게 한참 쭉 따라가다 리드하여 "탕!", "명중!" "굿 샷!" 차안에서 동생의 기쁜 축하의 목소리. "리키"는 떨어진 지점을 몰라 "폴"이 보고 쫓아가 물고 일어서는데 노 선배님의 개 "루비"가 가로채어 물고 온다. 루비"는 "폴"보다 1개월 늦게 태어난 아메리칸 부리타니(britany)인데 덩치가 "폴"의 두 배나 더 커 겁이 나서 빼앗겼나 보다. 노 선배님은 처음으로 꿩을 운반한 것이라며 오늘은 기분이 좋아 한잔 사신단다. 이꿩은 무조건 노선배님 거다. 이렇게 해서 땡포 박은 박상무의 도움으로 오늘 혼자서 장끼를 3마리나 잡았다. 이번 시즌 처음이다. 비록 한 마리는 놓쳤지만 명포 소릴 들었다. 노선 배님 말씀, "이젠 박 사장도 절정에 오른 것 같소!" 땡포 박 이야기, "제가 지금 몇 살인데 절정입니까?" "하! 하! 하! 명포(명포수의 준말)라는 이야기지! 뭐!" "감사합니다!" 이제는 "리키"도 5살 반이 되더니 제법 한다. 먼저 간 명견 "루키"의 명성에 가려 빛을 못 보지만 오늘 노 선배님과 동생 앞에서 수색, 포인, 숨은 꿩 찾는 것을 보고는 너무들 부러워하며 이젠 그만 야단치고 명견(名犬) 대접을 해 주어야 된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래, "리키"야! 미안하다. 이젠 야단 안치고 "폴"과 똑 같이 사랑해 줄께! 약속하마!" 그런데, 그런데, 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던 아내 정 포수가 오늘은 없으니 너무도 허전하고 신명이 나지를 않았다. 내가 장선달을 오래간만에 세 마리나 잡는 모습을 직접 보았더라면 신랑이 더욱더 믿음직스럽고 대견스러웠을 터인데..... 너무도, 너무도 아쉽구나! 그래서인지 별로 기쁘지도 않네 그려. 나 참! 팔불출인가? 에라! 팔불출이라고 놀림 받아도 좋다! 항상 곁에만 있어 준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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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포 박이 “명포” 소릴 듣던 날 (2006년 2월 5일 맑은 후 흐림) 아내 정 포수는 꿩도 못 잡으면서 이틀 눈속 사냥에 곯아서 이번엔 빠지고 동생 박 원장, 노한성 선배 님 그리고 박홍수 상무와 같이 사냥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먼저 이틀사냥에 골탕을 먹은 해보, 나산면의 접경에서 다시 한 번 하기로 하고 도착하니 8시 40분이다. 늘 하던 대로 박 상무는 맨 위, 그 다음이 나 그리고 동생과 노 선배님은 맨 밑 논이나 밭에서 털어 나갔다. 원래 박 상무는 나하고 동갑이나 주력(走力: 빠르고 잘 걷는다는 말)이 좋아 개들을 데리고 산 정 상에서 아래로 몰아 내가 쏘기 좋게 하는 작전을 늘 써왔다. 오늘도 계속 이 작전을 쓰는데 10시 반까지 한 마리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또 꽝을 치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드는데 어느덧 염소농장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지난번과 똑같이 여기에도 꿩이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제일 정상에 있는 묵밭까지 올라가 보았으나 실망. 혹시나 하여 묵 밭 제일 높은 끝 지점에 개를 보내니 아니나 다를까 밭 아래 빽빽한 소나무가 있는 산 아래에다 "리키"가 멀리 포인을 하는 것이다. 묵밭에서 놀다가 개에게 밀려 나무속으로 숨었나 보다. 박 상무에게 눈짓을 하니 뒤로 돌아 산중턱아래에 내려서서는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꿩을 내 쪽으로 모는 것이다. 이때 나는 재빨리 "리키"의 리모컨 비퍼(beeper: 개의 위치를 나타내는 음향)를 켰다. 비퍼 소리를 들어보니 꿩이 아래로 빠지다 박 상무 고함소리에 놀라고 "리키"한테 쫓기어 산 위 밭에 있는 나에게로 오는 모양이다. 꿩이 다 나올 무렵 "폴"이 앞을 막으니 옆으로 조금 더 기다가 다시 "리키"에 막혀 어쩔 수 없이 급하게 날았다. "꽈드등!! 꺼겅껑껑!!!" 장선달님(장끼의 애칭)이 너무 다급해 내가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나에겐 아주 쏘기 좋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땅에서 7~8m 높이에 수평으로 나니 절호의 찬스, 쭉~ 따라가다 "탕!". 선달께서 이윽고 무너지는 게 보였다. 이때 "폴"이 쫓아가더니 아직 살아 있어 겁이 난 듯 물었다가 놓고, 또 물었다가 놓고 하다 "리키"에게 빼앗겼다. "리키" 덕분에 잡은 것이니 그대로 놔두었다. 조금 있다가 헐레벌떡 박 상무가 올라 와서는 "역시 잡으셨군요! 야! 명포수십니다!" 자기가 잡은 것보다 더 기뻐했다. "아니야, 박 상무 덕분에 잡았지 내가 잘 쏴서 잡은 게 아니지! 굉장히 힘들었죠?" "꿩을 잡았는데 뭐가 힘들어요? 야! 기분 좋다. 오늘 꽝을 면했네요. 하! 하! 하!" 그 동안 얼마나 공을 친 적이 많았으면 이런 얘기가 나올까? 둘이서 깔깔거리며 내려오는데 산 아래 논까지 뻗쳐진 작은 계곡에다 "리키"가 또 포인하는 것이다. 앞에 총을 하려니 15m 더 윗쪽에서 소리도 내지 않고 나는 까여사(까투리)가 보였다. "야! 꿩 날랐다! 올라 와라!" 사냥을 30년 이상을 했으면서도 바보같이 너무 꿩이 귀해 그 한 마리밖에 없으려니 했다. 웬걸, 다시 오른쪽 20m 앞에서 장선생이 "프드등!" 나르는데 겨냥을 하니 솔가지가 앞을 막는다. 그 래도 할 수없이 급하게 쏘니 나무 가지만 부러지고 유유히 "엿이나 잡수세요!" 하고 비웃으며 날아가는 것 같았다. 이게 또 웬일? 내 옆 10m 에서도 멋지게 생긴 장선달님께서 뜨시는데 축사지붕 쪽으로 가니 쏠 수가 있나? 겨냥도 못해보고 멍하니 쳐다 만 볼뿐. 너무 한심하다. 방심한 내 자신이..... 염소농장 근처에서는 거의 까여사만 봤지 장선달을 세 마리나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상무가 으스대며 차에 오르니 다 야단법석이다. 축하한다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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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포 박의 오발 사건 (2006년 2월 5일) 오발(誤發)한다면 누구나 초보(初步)일 때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30년 이상 경력을 가지고 있는 땡포 박이 오발을 하다니..... 너무도 한심스럽다. 창피하다. 부끄럽다. 동료나 후배 엽사(獵師)님들께 얼굴을 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을 교훈으로 삼고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하는 바이다.
나는 원래 좀 소심한 편이나 준비성이 많고 침착해 주위에서 늘 칭찬(?)을 많이 받았다. 또 내 자신 실수를 용서 안하고, 또 했다면 자신을 질책하고 늘 반성을 하곤 했다. 그러나 지난 2월 5일(2006년) 장끼를 3마리나 잡아 "명포(名砲)"소릴 듣던 날 사냥을 다 끝내고 엽총 손질(수입)을 하려다가 그만 오발사고를 내고 말았다. 동생 박 원장이 몸이 매우 안 좋아 사냥을 빨리 끝내고 일찍 귀가하자고 해 부지런히 내려오다 보니 노한성 선배님께서 마을 정자에서 엽총 손질을 하시는 게 보였다. 원래 차에 가까이 오면 늘 미리 총을 꺾어 총알을 빼는 것이 원칙인데 그 날은 어찌 된 영문인지 그냥 손질을 한다고 대들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노 선배님 보고 꽂을대를 접지 마시라고 말씀을 드리며 내 총 멜방 끈을 풀었다. "아! 격발(擊發)을 안 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개머리판은 땅바닥에 총구는 하늘로 세우고 방아쇠를 건드리는 순간 "꽝~!" 두발이 다 나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왜 총알이 나갔는지 왜 총알을 안 뺐는지 영문도 몰라 한참을 멍청하게 앉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로 만든 정자 천장을 뚫고 기와 한 장을 박살을 내어 하늘과 통하여 있었다. 너무도 기가 막혔다. 몹시도 놀란 주위 엽우(獵友)들의 경멸하는 듯한 싸늘한 눈초리..... 나는 너무도 부끄러워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자꾸만 되풀이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얼굴은 수치와 모멸감에 벌겋게 닳아 올랐다. 이 날은 매우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 마을사람들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동생한테 동네 회장이나 이장한테 양해를 얻고 해결하고 가자니 자기가 너무 힘들다고 얼마나 재촉을 하는지... 결말이 나자면 오늘 올라가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너무 괴로우니 다음날 다시 내려와 해결하란다. 도망치듯 빠져 나오니 수치심에 너무도 한심하고 내 자신이 너무 역겹고 비참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술만 퍼먹고 집에 와서도 잠이 안 와 또 양주를 들이부었다. "아! 차라리 동네에다 이야기라도 하고 와야 되는데...." 후회막급이다. 너무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아내 정포수가 의아하여 털어놓았더니 "비겁하게 왜 도망쳤느냐?"고 언성을 높였다.(그 날 아내는 참석하지 않았음) "미안해요. 당신 말이 맞소. 당장 내일이라도 내려가 사과하고 해결하리다." 그러나 대설주의보가 내려져 다음날도, 그 이튿날도, 또 그 다 다음날에도 내려갈 수 없었다. 계속 오는 눈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주말에 내려가 이장을 찾으니 이 동네엔 반장 밖에 없어 반장한테 정중히 사과하고 지붕 고치는데 쓰라고 금일봉을 건네니 우리가 수리하려고 했는데 웬 큰돈을 주느냐며 받기를 사양하였다. 그래도 내 정성이니 남은 것은 노인정에 써 달라하고 큰 쵸코렡 상자와 함께 건네니 감사하다고 마지못해 받아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이렇게 원만하게 해결은 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오발을 한 머저리 포수”라는 수치심이 자리를 잡고 있어 너무도 씁쓸했다. 벌써 치매가 온 것일까? 왜 차(車)에 가깝게 왔는데도 총알을 빼지 않았나? 밤낮 후배나 동료 엽사에게 총알을 뺐느냐고 확인하고, 외대는 총알을 다 빼 놀이쇠를 후퇴시키고, 쌍대(雙帶)는 꼭 꺾어 놔야 한다던 사람이 이 무슨 창피하고 황당한 일인가? 아마도 내가 너무 자만해서, 건방져서 이런 일이 닥친 것이리라. 아! 지금 이 순간에도 반성하고 또 반성해서 내가 늘 부르짖는 겸손한, 겸허한 사냥꾼이 되어야 하겠다는 작심을 해보고 또 해 본다. 엽사 여러 분! 총에는 베테랑이 따로 없습니다. 조심, 조심, 또 조심해야만 합니다. 2006년 2월 13일 (후기) 같이 공렵(共獵: 같이하는 사냥)하셨던 노 선배님(2015년 6월 6일 작고)께 전후 사정을 말씀드리니 칭찬을 해주셨다. 입이 마르시도록..... 박 사장과 같이 사냥 다니는 게 행복하고 영광이시라며..... 그러나 내 마음은 아직도 수치심에 멍들어 있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 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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