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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를 고쳐 주신 스승 이야기 사냥 다니는 동안 스승이 계셨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사냥꾼이라 생각한다. 나는 1982년 금렵이 해제되어 83년부터 드디어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83년부터 95년까지는 도로 사정도 좋지 않고 원거리 출렵(出獵)이 많아 각 총포사(서부, 신당, 제일, 동호 등등) 단위로 주로 단체버스를 이용해 출렵을 하였다. 처음엔 서부 총포(박등용 선배엽사님 운영)로 출렵하다가 이듬해엔 신당 총포로 옮겨 따라 다녔다. 이 신당총포 대표되시는 분이 김건철씨인데 이분이 우리 어머님 외사촌 동생이셨고 선친께서도 옛날 이분이 운영하던 대흥 총포 임원이셨으며 이종사촌 처남매부사이라 각별하게 지내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도 이 신당총포회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행운을 가져다 준 셈이다. 여지껏 각 총포사의 업주들이나 지방 전문포수와 많은 공렵(共獵)을 해 보았으나 이분만큼 불질을 잘 는 분은 아직도 보질 못했다. 이 김건철 선배엽사님의 꿩이나 노루를 쏘는 솜씨는 가히 탄복할 만 했다. 워낙 일찍부터(17, 8세부터) 배우셔서인지 낡고 낡은 그야말로 다 떨어지다시피한 영국제 "웨불리 스콧 트" 12구경 30인치 수평 쌍대로 쏘시는데 좀처럼 서두르지 않으셨다. 나하고는 서로 꿩을 많이 잡아 원로 회원들께 나누어 드려야 되는 무언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따로따 로 사냥을 해야만 했고, 또 제일 좋은 엽장(獵場)은 늘 나에게 할애해 주셨다. 주중 개인플레이를 갈 경우만 공렵(共獵)을 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나도 못 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속사이기 때문에 내가 빼먹는 것만 골라 쏘 시는데도 항상 정확했다. 물론 내가 2발 이내에 잡으면 기회가 생기시지 않겠지만 어찌 항상 잘 맞으라는 법이 있나? 여하튼 이 어른보다 내가 훨씬 더 젊지(사부님은 1928년 생), 동작 빠르지, 주력(走力) 좋지, 뭐 하나 모자라는 게 없는데 항상 명중이니 stress를 많이 받을 수밖에.....(단지 내 개가 잘해서 더 많이 잡은 적은 많이 있었음) 어느 날 사냥을 끝내고 귀경(歸京)을 할 때(90년 경남 사냥할 때라고 기억됨) 버스 안에서 약주가 거 나하게 취하신 채 나에게 하시는 말씀 "장 조카! 자네는 늙어서도 빨리 쏠 거야? 일 년에 몇 마 리는 걸레가 되지? 좀 천천히 쏘도록 하시게!" 하시는 것이었다. 이 말씀이 왜 그리 내 마음에 와 닿는지, "네! 알았습니다! 천천히 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약속 을 했다. 그러나 천천히 쏘기 시작하고 나서는 웬일인지 도통 총이 맞질 않았다. 즉 일단 꿩이 뜨면 재빨리 견 (肩着)을 하고 나서 꿩을 따라가다 3~ 40m쯤 가면 격발(擊發)을 했는데 이게 영 안 맞는 것이다. 7~10마리씩 잡던 실력이 2, 3~4마리로 준 것이다. (그 시절은 선배 엽사들이 못 잡는 분이 많이 계 기 때문에 가급적 많이 잡아 먼 사냥 길에 "꽝" 치시는 것을 없게 해 드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음.) 또 어떤 때는 공치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그 동안은 버스 안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명(?) 포수라 인정을 받았는데 천천히 쏘고 나서 는 영 맞질 않아 집사람한테도 "땡 포수"라고 놀림을 받을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 때 무던히도 헤매면서도 내 나름대로는 부지런히 열심히 노력을 했었다. 첫째, 견착(肩着 : 어깨에 총을 대는 동작)이 잘못 됐나? 둘째, 스탠스(발 자세)가 제대로 됐나? 셋째, 너무 서두르지 않나?, 속사(速射)할 때에는 잘 맞았으므로 총은 내 몸에 잘 맞을 거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어! 이제는 속사를 해도 안 되는 것이다.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이젠 꿩이 날라도 너무 긴장하니 더욱 더 안 맞는 것이었다. 어영부영 2년이 흘렀다. 이때 사부님께서 하시는 말씀 "어때? 잘 안 맞지? 내가 한수 가르쳐 줄까? 고쳐지면 나한테 크게 한턱 쓰시겠나?" 금방 고쳐지지도 않을 것 같고 너무도 속상한 나머지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 정으로 "네! 여부가 있나요?" 했다. "장조카! 꿩이 나르면 재빨리 겨냥해서 쭉 따라가거나 기다리다 쏘지?" "어? 어떻게 아시지?" 귀에 쏙 들어왔다. "그런데요?" "그러면 안돼! 꿩이 나르면 나는 방향으로 쳐다보면서 천천히 날라 가는 쪽으로 몸을 돌려 20m쯤 간 뒤에 겨냥해서 쏴 봐!" "그게 뭐가 달라요?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안 맞으니까 내 얘기대로 꼭 해 봐!" 하시는 것이었다. 별것도 아닌 것 같고 긴가 민가 했지만 너무도 안 맞으니 그대로 실천할 수밖에..... 어~ 라!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꿩도 많아 많이도 만났지만 쏘는 대로 척척 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 날 8, 9마리 잡고 의기양양해서 버스에 오르니 "장 조카님! 내 말대로 잘 지키셨구려. 축하하오! 당신이 이젠 내 영원한 수제자요!" 하시면서 내 손을 덥석 잡으셨다. 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얼마만의 일인가? 그토록 노력해도 안 되더니 왜 이렇게 쉬운 걸 몰랐나? 이젠 사부님이 원망스러웠다. "아저씨! 왜 바로 가르쳐 주시지 않고 2년씩이나 헤매고 고생한 다음에 가르쳐 주세요? 네?" 다 이유가 있었단다. 사냥꾼들은 다 너무 고집이 세서 금방 가르쳐 주면 듣질 않는단다. 그래서 이번엔 아주 작정을 하고 내가 무지하게 고생을 하는 걸 뻔히 보시면서도 가르쳐 줄 수 없었단다. 항상 실패하셨으니까..... "내 마음인들 오죽 아팠겠니?"하시면서 그래도 내가 사부님께서 길들인 최초의 제자란다. "아마 최후일지도..."라고 말씀을 흐리셨다. 나는 우리 사부님을, 아니 우리 아저씨를 덥석 끌어안았다. "감사합니다. 몇 번이라도 큰 턱을 내겠습니다." "아냐, 그 동안 내가 회원들한테 줄 꿩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데, 얼마나 고마웠는데, 앞으로도 계속 부탁함세!" "오늘 잡은 꿩, 기념으로 다 내놓겠습니다!" "아냐, 그 동안 제대로 잡지도 못 하고도 꿩을 내놓은 적이 많았는데 조카님도 필요 할 테니 오늘 5 리만 가지고 가고 나머지만 주시게!" 더 이상은 받지 않으셨다. 그 후엔 버스 안에서는 자타가 부인할 수 없는 부동의 톱 사냥꾼이 된 것이다. 지금도 아내가 2발 쏠 때 나는 첫발을 당긴다. 과연 어떤 것이 더 명중률이 높을까? 이제는 그 사부님을 영원히 뵐 수가 없다. 몇 년 전에 너무도 멀고도 먼 긴 여정을 떠나셨다. 최초의, 최후의 제자를 남기신 채..... 김건철 사부님! 건철 아저씨! 제가요, 항상 경건한 마음으로 사부님 아니 아저씨 명복을 빌고 있다는 걸 아시나요? &n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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