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의 不老草와 만병통치약
홍혜걸 / 의사
노화방지니 회춘이니 하는 말들은 더 이상 돌팔이나 사이비의 용어가 아니다.
다소 돌팔이처럼 들리겠지만 이번 호엔 ‘不老草’와 ‘만병통치약’에 대한 이야길 해볼까 한다.
필자는 본래 ‘불로초’니 ‘만병통치약’이니 하는 용어 자체를 싫어하지만 이들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인 동시에 의학의 발달로 제법 효능을 갖춘 것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밝혀진 여러 가지 과학적 연구결과들을 종합해볼 때 가장 불로초 내지는 만병통치약에 가까운 것은 무엇일까.
만병통치약으론 단연 아스피린을 꼽아야겠다. 1900년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엘에서 처음 시판된 아스피린은 상품명으로 화학적 성분은 아세틸 살리실산이다. 아스피린은 통증을 가라앉히는 鎭痛진통, 염증을 없애는 消炎소염, 열을 내리는 解熱해열이라는 3가지 작용을 동시에 지닌다. 라이벌이랄 수 있는 타이레놀이 진통과 해열이란 2가지 작용만 있는 것에 비해 아스피린은 소염 작용까지 지니고 있다. 따라서 두통처럼 염증이 동반되지 않은 통증엔 속쓰림 등 위장장애가 덜한 타이레놀이 좋지만 관절염 등 염증이 동반된 통증엔 아스피린이 우월하다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아스피린에서 마치 양파껍질 벗겨지듯 새로운 효능이 규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중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은 혈전 생성을 억제하는 효능이다. 血栓혈전이란 혈관에서 만들어지는 피떡 또는 혈관 부스러기로 혈관을 좁게 만들어 심장병을 일으키거나 아예 떨어져 나올 경우 뇌혈관을 막아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아스피린을 복용할 경우(진통소염제로 복용할 때보다 5분의 1 정도의 용량이면 충분하다) 피를 굳게 하는 혈소판의 작용을 차단해 혈전 생성을 억제한다. 아스피린의 혈전 생성 억제 효과는 이미 학문적 검증을 끝내고 실제 임상적으로 환자에게 널리 쓰이고 있다. 심장병 발작으로 수차례 쓰러져 수술을 받은 前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에게 처방된 약도 다름 아닌 아스피린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과거에 심장병과 뇌졸중을 앓았거나 앞으로 앓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예방 차원에서 처방되고 있다.
아스피린은 암 예방에도 관여한다. 실제 대장암과 전립선암, 난소암 등 일부 암에선 아스피린을 복용할 경우 암 발생률이 떨어진다는 믿을 만한 연구결과들이 있다. 어떤 이유로든 과거 아스피린을 많이 복용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암에 덜 걸린다는 것이다. 이유는 암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 바로 만성적인 염증이며 아스피린으로 염증을 조기에 차단하면 염증 때 나타나는 세포 복구과정에서 암세포와 같은 불량품이 만들어질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으로 추정된다.아스피린은 치매 예방에도 관여한다. 아스피린을 많이 복용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치매가 뇌혈관의 염증 및 손상에서도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다소 엉뚱한 이야기지만 아스피린은 氣의 통제자 역할도 맡게 될지 모른다. 알다시피 氣는 서양의학에선 생소한 개념이지만 존재 여부에 대해선 서양의학을 전공한 많은 과학자들도 공감하고 있다. 비록 물질의 형태를 갖추지 않아 객관적인 분석을 하긴 어렵지만 신진대사 등 氣로 상징되는 인체의 기능은 분명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氣를 억지로 물질의 형태로 환원할 때 가장 적합한 후보 중 하나가 바로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다. 인체의 모든 조직에서 발견되는 프로스타글란딘은 조직 1그램 중 10억 분의 1그램밖에 안 되지만 인체가 발현하는 신진대사엔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통증이나 염증 유발, 열의 발산, 근육과 혈관의 수축, 위산 분비의 저하, 혈압 및 혈액, 체온의 조절 등 지금까지 밝혀진 작용만 수백 가지에 이른다. 같은 프로스타글란딘이지만 신체의 부위에 따라 한쪽은 수축, 한쪽은 이완 등 정반대의 작용을 보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인체 내에서 극미량 합성되지만 신출귀몰한 작용으로 각종 신진대사를 막후에서 조정하는 숨은 실력자인 셈이다.
의학 교과서엔 프로스타글란딘에 대해 생리활성물질이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의 용어가 붙여져 있다.
신진대사 또는 생리현상 등 인체가 수행하는 모든 기능적 동작을 조절한다는 뜻이다.
프로스타글란딘은 대개 정신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육체적으로 조직의 손상이 생기는 등 인체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 주로 관여한다. 처음엔 신진대사를 올려줌으로써 인체가 비상사태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스트레스와 손상이 만성적으로 지속될 경우 프로스타글란딘은 인체를 자칫 탈진 상태로 유도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아스피린이 이러한 프로스타글란딘의 과도한 작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물질이란 것이다. 즉 프로스타글란딘이 氣의 소진을 통해 비상사태시 당장의 생존에 필요한 신진대사를 수행하고 에너지를 발산한다면 아스피린은 氣의 축적을 통해 장래에 대비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아스피린이야말로 프로스타글란딘을 통제함으로써 신진대사 또는 氣를 인간이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암과 치매 예방을 위해서 누가, 어떻게, 얼마나 많은 용량의 아스피린을 복용해야하는지에 대해선 확증된 이론이 없다. 또 氣를 주관하는 유력한 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을 통제하기 위해 아스피린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는 거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만병통치약으로서 아스피린이 지닌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며 생활 속에서 아스피린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염증이나 고열, 통증이 있다면 당연히 아스피린을 써야겠다.
또 심장병이나 뇌졸중 발생의 위험이 있는 사람은 의사의 처방 하에 예방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해야겠다. 그러나 행여 과로나 스트레스로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아니면 중요한 시험이나 과제를 앞둔 상태라면 소량의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도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통이나 소염 작용을 제외한 혈전 억제나 프로스타글란딘의 차단 등 아스피린이 지닌 나머지 효과를 얻기 위해선 하루 반 알 정도로도 충분하다. 필자는 중요한 일을 해야하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아스피린 반 알을 한두 차례 복용하곤 한다.
이 경우 기의 상승이랄까 분명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물론 이것은 필자의 주관적 경험이며 단순한 僞藥효과일 수도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권할 일은 못 된다. 학문적으로도 입증된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의학적 개연성은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게다가 아스피린은 값쌀 뿐더러 의사의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이며 이미 시판 이후 1백년이 넘게 사용되어 오는 동안 인종과 국가를 초월해 충분히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는가.
궤양으로 인한 속쓰림이랄까 당장 수술을 앞둔 환자(이 경우 아스피린 복용은 피를 잘 굳지 않게 만들므로 수술 부위의 지혈을 방해한다)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사람에겐 반 알 정도의 아스피린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컨디션이 나쁠 땐 카페인이 들어있는 드링크보다 아스피린 반 알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이번엔 불로초 이야길 해보자. 의학적으로 불로초에 가장 가까운 것은 성장호르몬이다. 그동안 비타민, 여성호르몬, DHEA(남성호르몬의 前驅物質전구물질), 멜라토닌 등 많은 건강보조식품이나 약품 등이 노화방지와 면역력 증강 등의 효과로 불로초 반열에 들었지만 효능이란 측면에서 볼 때 성장호르몬에 뒤진다. 수면 도중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은 지금까지 주로 왜소증 어린이의 치료에 사용돼 왔다. 그러나 최근 성인병 예방과 노화 방지, 면역력 증강 등의 효과가 양파껍질 벗겨지듯 밝혀지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이름을 성장호르몬에서 노화방지 호르몬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일고 있다. 학문적으로 입증된 성장호르몬의 효능은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지방은 빼고 근육은 늘려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는 복부 비만을 개선한다. 둘째, 동맥경화를 막아 심장병 사망률을 낮춘다. 셋째, 정신적 활력을 증진시키고 불면증을 치료한다. 넷째, 피부의 탄력성과 皮下피하지방을 늘리는 미용 효과를 지닌다. 다섯째, 면역세포인 T림프구와 적혈구를 증가시킨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위에 언급한 객관적 효과보다 환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효과다. 많은 환자들이 행복감이랄까 삶의 질이 개선됐음을 피부로 느낀다. 성장호르몬은 20세를 정점으로 10년마다 14%씩 감소하므로 60대에 이르면 대부분 결핍 상태에 놓여 있다. 호르몬이란 단어가 주는 거부감이 있지만 폐경 여성의 여성 호르몬 요법처럼 인체에서 부족한 만큼 외부에서 성장호르몬을 보충해주는 것은 의학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이 성장호르몬 예찬론자들의 주장이다. 현재 의학적으로는 복부 비만이 심하거나 신체적, 정신적 활력이 떨어진 中年과 老年층 가운데서 혈액 검사상 성장호르몬이 부족한 경우 치료 대상이 된다.
성장호르몬과 관련된 가장 큰 오해는 암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무근이다. 96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3천명 이상의 투여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장호르몬과 암 발생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암이 생긴 사람이라면 조심해야 한다. 성장호르몬이 암세포의 증식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성장호르몬이 정상세포를 암세포로 만들지는 않지만 이미 생긴 암세포를 잘 자라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성장호르몬 요법을 받기 전엔 몸에 암이 있는지 사전 검사가 필요하다. 30% 가량의 투여자에게서는 몸이 가볍게 붓고 관절이나 근육이 아픈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의학적으로 성장호르몬 요법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암 진단을 받은 환자, 둘째
뇌출혈 등 뇌의 질병으로 뇌압이 올라가 있는 사람, 셋째 당뇨 망막증으로 망막의 신생 혈관이 증식
중인 경우다.성장호르몬 요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안전성보다 불편함이라고 봐야한다. 먹는 알약이 아닌 주사제이기 때문이다.
당뇨 환자의 인슐린 주사처럼 매일 취침 전 한차례 스스로 피하 주사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비용도 만만치 않아 한 달에 20만∼25만 원 가량 소요된다. 유전 공학적인 기법으로 사람의 것과
똑같은 성장호르몬을 합성한 제품이 국내외 다섯 개 제약회사에 의해 시판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주사제보다 효능은 다소 떨어지지만 체내에서 성장호르몬 분비를 유도하는 알약이나 스프레이 製劑들이 건강보조식품으로 개발돼 시판되고 있으므로 참고할 만 하다.
성장호르몬이 각광받게 된 이유는 헐리우드의 유명 배우들 때문이다. 골디 혼, 닉 놀테, 올리버 스톤,
조지 해밀턴 등 유명 배우와 감독들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성장호르몬 요법을 받는다는 소식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부터다. 여기엔 富와 명예 등 무엇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이들 好事家들의 不老長生과 回春에 대한 허영심 섞인 강렬한 욕구와 이를 부추겨 돈을 벌어 보겠다는 미국의 유명 私設 노화방지 클리닉의 성장호르몬 요법에 대한 과대포장과 매스컴 플레이가 분명 한몫 했다.
그러나 이것은 성장호르몬을 대량 합성하기 어려워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비쌌고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학문적 검증이 충분하지 않았던 90년대 초반의 이야기다.
그동안 헐리우드 배우들이 모르모트나 다름없게 헌신적으로 임상 시험에 참여한 덕분(?)에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검증이 충분히 이뤄졌으며, 제조 기술의 발달로 비용도 상당히 절감돼 이젠 건강에
관심이 있다면 중산층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노화방지를 목적으로 국내 최초로 성장호르몬
클리닉을 개설한 경희대병원 김성운 교수는 본인의 부모에게도 이를 시술한다고 털어놨다. 대통령
주치의인 연세대의대 내과 허갑범 교수도 필자와의 방송 인터뷰를 통해 노인들의 건강을 위해 성장호르몬 요법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불로초’니 ‘만병통치약’이니 하는 용어가 다소 거슬렸다면 독자들의 이해를 구한다. 아스피린과
성장호르몬의 효능이 필자의 글에서 다소 과대 포장된 점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마구잡이식으로 이들 약이 남용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결코 필자의 의도가 아니다. 다만 노화 방지니 회춘이니 하는 말이 돌팔이나 사이비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라 주류 현대 의학에서조차도 어느 정도 가능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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