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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은 작지만 다재다능한 산이다. 보통 동백이나 벚꽃으로 유명하지만 선운산 단풍이야말로 감각이 녹아내릴 정도로 감미로운 산경이다. 선운산 단풍은 화사함이 지나친 내장산과 달리 그윽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이 배어 있다.

대체로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찾으면 절정의 애기단풍(당단풍)을 만날 수 있다. 이맘때의 선운산은 조심해야 한다. 도솔계곡으로 올라 절정의 단풍을 감상하고 낙조대에서 절정으로 치닫는 일몰까지 보게 된다면 눈멀고, 마음까지 멀어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선운산은 낮다. 최고봉인 경수산이 고작해야 444m다. 나머지는 300m 내외의 고만고만한 산봉들이 올망졸망 둘러서서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 대개 이 정도 높이면 시골 야산 이상 대접받기 어렵지만, 선운산은 도립공원이란 대접을 받는 명산으로 손꼽힌다. 높이를 극복한 수려한 산세와 자연환경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이해의 열쇠는 낙조대에 있다. 낙조대에서 본 일몰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낙조대 오르는 길의 천마봉 자락에서 도솔암을 바라보면 알게 된다.

청자빛을 띤 예스런 바위들이 스스로 기둥이 되어 계곡을 메우고,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우리나라의 수묵화로 그려 놓은 듯한 독특한 비경이 펼쳐진다. 사람의 솜씨인 도솔암은 산을 해치지 않는 어우러짐의 경지에 닿아 있다. 융기한 예술품 사이를 색칠하는 건 단풍으로 빨강, 노랑, 초록, 주황이 감미롭게 뒤섞인 걸 볼 수 있다.

천마봉의 높이 자체는 이 암봉을 안은 선운산 자체의 높이가 그러하듯, 별반 대단치 않다. 고작 100m도 안 되는 높이로 섰다. 그러나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포효하는 듯한 절묘한 생김과 수치상의 높이보다 몇 곱절은 더 거대하게 느껴지게 하는 검은 바위그늘이 항상 하늘을 가리는 앉음새로, 천마봉은 이 땅의 다른 산들의 그 어떤 암봉도 선뜻 맞수로 나서길 꺼려 할 장엄미를 보인다.

산행은 단풍감상이 주목적이니만큼 도솔계곡을 지나도록 잡아야 한다. 선계곡을 통과해 능선 일부를 종주해 하산하는 코스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공원주차장에서 최고봉인 경수산으로 올라 도솔산을 지나 낙조대까지 종주해 도솔암을 거쳐 도솔계곡으로 내려설 수 있다. 천마봉 정상에서 도솔암으로 내려선 뒤 도솔계곡 변의 진흥굴, 선운사 등 명소를 보며 하산하는 코스가 선운산 당일산행으로는 가장 권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