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이다.
음력으로 매월 15일을 보름이라 하고
이 가운데 정월의 보름을 큰 보름이란
의미로 대보름이라 한다.
대보름 전날 저녁에는 모여앉아 부럼을 깨고
다음날 그러니까 대보름 아침은 오곡밥이나
찰밥을 지어먹는다.
반찬도 여느 때와는 달리 갖은 나물류가 밥상에 올려진다.
상추쌈에 된장처럼 이들 나물 가운데 빠지지 않는 나물이 있다.
고사리나물이다.
오늘은 이 고사리에 대하여 얘기해 보기로 하자.
고사리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중국고대사에 나타나는 백이와 숙제다.
둘은 형제로 은(상)나라 변방에 있는 고죽군의 영주 아들들이다.
부친이 죽자 아들 가운데 누구 하나는
대를 이어야 했지만 형제는 서로 양보하는 미덕을 보인다.
때에 작은 영주들을 다스리는 서백에 *희창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갔다.
그러나 서백창은 이미 세상을 떠나 있었다.
서백창의 아들인 *희발이 뒤를 이어
막 서백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희발은 부친 상중인데도 군사를 일으켜 은을 치려했다.
출정길에 올르는 발에게 둘은 말고삐를 잡고 간언한다.
부친 상중에 거병하는 것은 효가 아니며
속국으로 대국인 은을 치려는 것은 충이 아닙니다.
의욕적으로 장도에 오르는 자신을 가로막자
몹씨 화가 난 발이 둘을 죽이려 하자 곁에 있던 *여상이 만류한다.
여상은 원정군의 군사(軍師)로 희발의 곁에서 보좌하고 있었다.
"둘은 의로운 사람들입니다.
사심을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라" 는
말로 변호하여 죽임을 면케 해준다.
은(상)이 무너지고 주나라가 들어서자 둘은 세상을
등지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연명한다.
백이와 숙제의 이름은 지조와 절개의 표상이 되어
중국뿐만아니라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런 백이와 숙제를 두고 일갈하는 사람이 있다.
*왕미자다.
그는 말했다.
그들이 숨어 든 산은 누구의 산이며
그들이 먹은 건 또 뉘 것인가?
수양산은 주의 산이 아니며 그 산에서 난 고사리도
주의 것이 아니란 말인가!
수양산엔 왜 들어갔으며 주려 죽을지언정
고사리는 왜 먹었단 말인가!
고사리나물은 제삿상에 빠지지않고 올려진다.
여기에는 의미가 있다.
제삿상에 고사리가 빠지지 않는 것은 후손들이 고난에
굴하지 말고 줄기차게 창성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고사리는 생존력이 강하다.
지면으로 순이 돋아나 꺽으면 다시 돋아난다.
또 꺽어도 다시 돋아난다.
지면 아래 땅속으로 줄기뿌리가 벋어있어 지상에서 꺽어도
꺽어도 순을 내미는 게 고사리다.
한 땐 고사리에 발암성분이 들어있다느니
감력식품이라서 사찰의 스님들이 즐겨 먹는다느니
하는 말이 떠돌았었다.
다 흘려버릴 얘기들이다.
다소 비린내가 나기는 해도 고사리는 탈 없이
우리 모두가 즐겨먹는 나물이다.
고사리는 남녘으로 갈수록 많은 것 같다.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고 제주도 고사리는
낫으로 벨 정도로 많이 돋는다 는 소릴 들었다.
오래 전, 꿀벌통을 가지고 늦 겨울에
여수로 내려간 적이 있다.
고사리가 무척 많았다.
버드나무가지 물올라 푸른빛 띠고
산오리나무 노오란 꽃 피우면
돋아나기 시작한 고사리는
벚꽃이 필 즈음이 되면 절정에 이르러
온 산에 지천으로 돋아난다.
산벚꽃 지기 전에 꿀벌을 가지고 올라와야
일 주일 가량 늦게 개화하는 고향 산야의
벚꽃에 맞출 수 있어
이동준비에 몹씨 바쁘기만 한데
아내는 고사리를 꺾으려 자꾸 자리를 떴다.
일하는 중에 보이지 않아 찾아 보면
가까운 산에 올라 고사리를 꺾고 있는 것이었다.
여자 몸이지만 잠간 이 삼십 분 꺾는 양이
이곳 고향에서 하루종일 꺾는 것 보다 많았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라치면 아내나 나나
고사리가 눈에 선 했던 게 지금도 기억된다.
어느 때인가는 꺾은 고사리를 삶아 양짓편에 널어 놓고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누군가가 몽땅 가져가 버린 적도 있었다.
6-7년 내려갔었는 데 매년 말린 건고사리 몇 박스씩
꺾어 가져와 이웃과 친지 그리고 고객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했다.
고사리는 이른 고사리가 맛이 좋다.
늦고사리는 다소 쓴 맛이 돌고 질기다.
하기는 입맛이 저마다 다르기에 늦고사리가 구미에
맞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내 경험이다.
여수에서 꺾은 고사리를 아내가 압력밥솥에
삶은 적이 있었다.
여느 때와 달리 고사리가 뭉개지고 흐믈거려
속으로 애써 꺾은 고사리 다 버려놓았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이것을 말렸다가 다음에 불려 요리해 먹어보니
모양도 제대로 살아나고 부드러워 먹기에 아주 좋았다.
고사리를 먹을 때 뻣뻣하고 거친 건 생고사리를 슬쩍
성의없이 삶아서 말린 탓이라는
여수 현지에 사는 고사리도사 아짐씨 말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꺾은 고사리를 슬쩍 삶아 숨만 죽이지 말고 푹 삶아야
다음 요리해 먹을 때 모양이 살아나고 부드럽다고 했다.
이른 고사리가 맛은 좋다할지 모르지만
산에 올라 꺾으려 들면 얻는 양이 많지가 않다.
맛은 떨어질지 몰라도 늦은 시기에 산에 오를수록
많이 꺾을 수 있다.
우리고장에서는 벚꽃이 만개할 때에 돋기 시작한다.
산에 올라보면 산불났든 자리에 많은 걸 보게 되고
오래 전 농사했든 묵밭이나 나무를 사그리 벌목한
곳을 찾으면 재미를 보게 된다.
하기는 이런 곳은 나 뿐만아니라 너 나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다 보니 고사리가 돋아 고개도 들기전에
꺾어버려 발품만 팔게 될 경우도 있다.
철 되면 적잖은 손님들이 고사리꺾으려 나를 찾아온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어김없이 한 두 무리는 찾아온다.
그러나 이런 날은 많은 양의 고사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마이카 시대라서 너 나 없이 고사리 꺾겠다고
도시를 떠나 차 몰고 산골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고사리 꺾으러 산에 오르는 데는 흡족히 비 내려
하루 띄운 날이 가장 좋고
아니면 많은 사람이 거쳐가기 전 금요일에
산에 올라야만 그나마 서운은 면할 수 있다.
아카시아꽃 필때 쯤에 산에 오르면 늦고사리
가방 채우는 데는 수월하다.
다만 더운 날씨에 날벌레가 안면 주위에 귀찮게 얼씬거리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됐다면 지면과 나뭇잎에 앉은
송화분이 날려 온몸에 뒤집에 쓰게 되는 고역을
감수해야 한다.
사냥꾼 나는 고사리철은 휴렵기(休獵期)지만 운동삼아
자주 산에 오른다.
고사리가 많이 나는 곳을 잘 알고 있지만 굳이 찾지 않는다.
그런 곳은 많은 사람이 다녀갔기에 제 때 맞추지 못하면
헛걸음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좀 없고 드믈다 해도 야산을 벗어나 큰 산으로
발길을 돌려 긴 거리를 나아가다 보면 사람발길이 닿지 않은
전인미답의 지경에 이르르게 된다.
이런 장소 한 두 곳이면 무게를 느낄만큼 한 가방 고사리를
메고 내려올 수 있다.
마음먹고 산에 두어 번 오르면 일 년 먹을만큼 얻을 수 있고
서너 번이면 친지와 친구들, 고객들에게 선물 할만큼 꺾어 올 수있다.
입맛 잃을 때 고사리와 도라지를 주로 한 나물에 참기름과
약간의 깨소금 쳐 비빔밥 해먹으면 일미 중에 일미다.
아내는 시골출신이라서 계절과 멸절음식을 챙기는 성격이다.
대보름을 앞에다 두고 로컬푸드 매장에서 팥이랑 차조를 구해놓았다.
알땅콩 알호두에 아몬드와 깐 호박씨도 사다 놓았다.
고사리, 콩나물 비롯한 몇몇 마른 나물거리를 불려 놓았다.
대보름 음식은 나누어 먹는 게 우리네 풍습이다.
이번 대보름에도 아내는 누군가와 장만한 음식
나누어 먹어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ㅡ희창: 흔히들 서백창이라 부르며 상이 무너지고
주가 들어서자 문왕으로 추증된다.
희발: 희창의 아들로 상을 패망시키고 주를 건국한다.
주무왕의 자리에 앉는다.
여상: 위수가에서 문왕과 조우하여 문왕과 무왕을 도와
주가 건국하는 데 공을 세운다.
제후에 봉해진다.
역사에는 태공망이라 기록되었지만 우리에게는
강태공으로 불리워진다.
왕미자:서진(西晋)시대의 인물이다.
왕미자는 자며 이름은 왕현이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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