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맺히는 수술자리에 가재의원은 하얀 느릅나무 진액을 쓱쓱 문질렀다.

수술실에서 나와 그대로 병원문쪽으로 향하는 고라니를

가재의원이 신경질적으로 붙들었다.

가지의원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고라니에게 수술비를 말했다.

​

고라니는 당황했다.

난처하게 된 것이다.

수술비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고 달리기경기에서의 일등을 꿈꾸며

꼬리를 잘라야겠다는 결심만으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동물들 사이에서 가재의원은 수술비나 치료비에

외상은 없다란 소문이 퍼져 있었다.

어떻게 외상은 안되겠느냐 고 고라니가 빌고 사정을 했다.

통하지 않았다.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고 찔린다 해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가재였다.

시간낭비 하지말고 정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은 뒤 나가라고 가재가 말했다.

피할 수 없었다.

고라니는 끝내 가재에게 몸둥이 어느 부분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가재는 쓸개가 필요하다 말했다.

달포 전 돈 많은 오소리영감이 가재의원을 찾아 와

나이가 드니 담즙이 달려 밤 일을 제데로 못하게 되었다며

쓸개 하나를 구해보라 했던 터였다.

가재는 고라니의 가슴께를 응시하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고라니는 젊은 데다 먹는 것도 연한 풀과 신선한 산열매만 먹어

녀석의 쓸개만 손에 넣는다면 부르는 값으로 팔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을 하고 있었든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 내 쉰 고라니,

도저히 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고개를 들고 쓸개를 내주겠다고 말했다.

총각 고라니는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귀나 눈이나 코 아니면 이빨도 그렇다.

만약 저 가재영감탱이가 이 것들을 요구한다면 자신은 장애동물이

되어 장가도 못가보고 동물들의 비웃음을 받으며

평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그나마 보이지 않는 쓸개라서 다행이라 여겼다.

재차 수술실에 들어가 쓸개를 떼어냈다.

고라니의 쓸개를 손에 쥔 가재의 찌그러진 얼굴은 한껏 펴졌다.

반면 병원문을 나서는 고라니는 꼬리자른 아품과

쓸개잃은 상실감에 허리는 구부러질대로 구부러졌다.

오늘도 고라니는 엉거주춤 구부러진 허리를 한 채 산야를 배회한다.

이런 고라니를 바라보는 작은 새들은 즈네끼리 통하는 말로

재잘거리며 놀려댄다.

"얼레리 꼴레리 고라니는 쓸개가 없대요"

"고라니는 쓸개가 없대요"

호티= 실지 있는 지명으로 금산군 군북면 호티리

내안= 실지 있는 마을로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의 순 우리말 이름

우리 마을과 강을 사이로 접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