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였다.

세상에 어찌 저런 얼굴을 지닐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가슴이 불룩한 것으로

봐서 분명 여자였다.

상을 물린 뒤 주인여자에게 이런 산중에 혼자 살게 된 연유를 물었다.

여자는 자신의 모습 때문이라 했다.

살아 온 날은 진정 저주스러웠다는 말을 시작으로

어려서부터 보는 사람마다 자신을 무슨 구렁이나 두꺼비 보는 것 마냥 대하였다는 것이다.

너무 추하다 보니 부모조차 천덕꾸러기로 여기니 사람 만나는 게 싫었다

산목숨 끊을 수 없어 사람들 사는 곳을 떠나와 이런 산속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 했다.

나이를 물었을 때 스믈 다섯이라 했다.

주인 여자, 처녀는 권율을 따뜻한 아랫목에 이부자리 펴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자신은 부엌 한편에서 쭈구리고 앉아 밤을 새겠다 했다.

과객의 처지에 과분한 처사라 느껴 거절했지만 주인 처녀는 한사코 권하기에

권율은 자리에 누웠다.

피곤한 몸, 구들의 온기가 전신에 퍼져 막 잠들려는 순간 문이 열리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주인 처녀였다.

권율은 잠든 척 했다.

그런 그가 깜짝 놀랐다.

주인 처녀가 덮은 이불을 들추고 권율 옆에 눕는 게 아닌가.

세상에 이럴 수가, 권율은 벌떡 일어났다.

호롱에 불을 밝혔다.

추한 주인 처녀의 일그러진 얼굴이 나타났다.

남녀가 유별하다는 말과 함께 어찌 이럴 수 있느냐, 권율은 호통을 쳤다.

얼굴 아래로 떨구고 말이 없는 주인 처녀,

한참 뒤에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권율을 쳐다보더니

자신을 품어 달라 했다.

이런 산중의 오막살이 집 한 방에 달랑 젊은 남녀 둘 이라고는 하지만

권율은 양반으로써의 체통이 있었다.

젊은 남자의 솟는 관능이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권율은 자리를 피하려 일어났다.

그런 그에게 주인처녀는 결연히 말하는 것이었다.

나가시기만 하면 저는 이 자리에서 죽겠사옵니다.

결심하고 있었는지 처녀의 오른손에는 칼이 들려져 있었다.

당신이 이곳을 찾아들지 않았더라도 저는 오늘밤 죽으려 했답니다.

산다는 것이 제게는 의미가 없었지요.

당신을 맞아들이는 순간 저는 결심을 했답니다.

당신 품에 한 번 안겨보고 남녀가 나누는 운우의 지정이 어떤지를 알고나

죽자, 저주의 세월이었지만 이 모든 게 신령이 허락한 내 마지막 은총이려니

하고 부끄러움 무릅쓰고 이렇게 애원합니다.

권율은 처녀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아! 미녀가 거기 앉아 있었다.

천상의 선녀가 하강한 듯한 기막힌 미녀가 자신을 바라고 있었다.

덥썩 끌어 안았다.

가진 남자의 기를 일으켜 처녀의 몸에 불어 넣었다.

천지가 생성된 후 생명이 화하고 사람이 나타난 후 어느 남녀가 이 같은

극치의 지정에 이르렀을까?

처녀는 자진했다.

마지막 가면서 그녀의 입술에서 나온 말,

아! 남녀의 운우지정이 이런 것이었구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율곡은 신립을 나무라지도, 권율을 칭찬하지도 않았다.

운명으로 돌렸을까?

임진년 왜란이 일어나 신립과 권율, 둘 모두 나라의 부름을 받고 출전했지만

신립은 탄금대에서 전사하고 권율은 당시 삼대대첩 가운데 하나인 행주산성에서

3만 왜군을 소수의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물리침으로

왜란을 전도시키는 계기를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