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60년은 됐을 겝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읽을 만한 책이 없었습니다.

야담과 실화라는 잡지가 있었습니다.

교직에 몸담고 있든 5촌 당숙이 이 잡지를 매달 거르지 않고 사 모았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책은 읽어야 만 직성이 풀리는 나는 우선 만화부터 보고

거기에 실린 소설까지 빼놓지 않고 읽고는 했습니다.

기억을 살려 그 잡지에 실렸든 얘기하나 여기에 옮겨 보겠습니다.

누가 썼는지,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지는 지나치기로 하고

그냥 재미있게 읽어 주었으면 합니다.

이율곡에게는 사위가 둘 있었다.

큰사위는 신립이었고 작은 사위는 권율이었다.

둘 모두가 역사에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로 보건대 율곡이 사람 보는 안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율곡의 생신에 두 사위가 처가에 들려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사위들을 대한 율곡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에는 신립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었고 권율의 얼굴에는 사기가 끼어있었다.

그런 두 사위의 얼굴이 뒤바뀌어 있었든 것이다.

신립의 얼굴에는 짙은 사기가 끼어 그늘이 져 있었고 반면 권율의 얼굴에는

생기 충만하여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조선조 성리학에 있어 주기론(主氣論)을 가지고 주리론(主理論)을 주창한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그가 이러한 사위들을 보면서 원인을 캐지 않을 수 없었다.

사위들에게 최근의 행적을 물었다.

먼저,

신립이 입을 열었다.

사냥길에 올랐다.

멀리, 당일에 돌아올 수 없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

사슴을 쫓다 보니 날이 저물었다.

이윽고 깜깜해 져 앞을 분간하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방향 잃은 채 얼마를 헤멨을까, 멀리 희미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불빛을 보고 찾아가니 산속에 웬 기와집 한 채가 버티고 있었다.

불빛은 그 집의 대문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리 오너라

기척이 없었다.

이리 오너라

불빛이 있으니 분명 사람이 있을 터,

신립은 처지가 처지이니만큼 계속해서 안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기를 한참, 안에서 기척이 있더니 대문이 빼꼼이 열렸다.

열린 대문 사이로 여자 하나 얼굴을 내밀었다.

젊은 처녀였다.

신립은 처녀에게 하룻밤 잠자리를 청했다.

아니 되옵니다.

처녀는 거절하며 대문을 닫으려 했다.

다급한 신립은 완력으로 대문을 밀치고 들어가 재삼 사정을 했다.

어쩔 수 없음을 알았는지 처녀는 신립은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저녁밥을 지어 올리는 것이었다.

밥 수저를 들기 전에 불빛아래 보는 처녀는 세상에 둘 없을만큼 미녀였다.

그런 얼굴이었지만 보니 수심이 가득했고 수척하고 뭔가에 질려있는 것 같았다.

이런 산중에 이런 큰 집에 이런 처녀 혼자라니!

밥상을 물린 신립은 처녀를 앞에 두고 궁굼한 것들을 물었다.

처녀는 입을 열어 자신의 처지를 신립에게 하소연하듯 이야기했다.

부친이 세상을 멀리해 이곳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재산이 많아 어려움 없이 살았는데 젊은 일꾼 가운데 무지막지한 한 놈이

자신의 미모를 탐하여 겁간하려다 실패했다.

놈은 쫓겨났지만 멀리 떠나지 않고 산 어딘가에 숨어있다 밤으로 나타났다.

자시만 되면 찾아와 가족들을 하나하나 죽였다.

마지막으로 혼자만 남게 되었다 하는 것이었다.

오늘밤 자시에 놈은 틀림없이 찾아 올 것이다.

놈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신까지 죽일 것이라 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신립은 대장부의 기개가 끊어 올랐다.

조금도 염려치 마시오, 내 그놈을 처치하리라

말로 안심을 시키고 안방에 잠자리 펴 처녀를 뉘었다.

신립은 벽장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