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 삼국통일의 일등공신이라면 누가 뭐라 해도 김 유신일 것이다.

김 유신에게는 누이가 둘 있었다.

위는 보희였고 아래는 문희였다.

보희와 문희는 자매지간 이었지만 성격차를 보였다.

언니 보희는 조신하고 차분했다.

반면 동생 문희는 활달하고 어떤 면에서는 당돌하기까지 했다.

두 자매, 갓 핀 함박꽃 같은 방년이 되었다.

어느 날 밤에 언니 보희가 꿈을 꾸었다.

여느 때와 다른 얄궂은 꿈이었다

동산에 올라 소피를 보았는데 소피 줄기가 크고 거세 온 서라벌을 덮어

삼키는 꿈이었다.

날이 밝았지만 지난 밤 꿈이 너무 생생하여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저 멍 한 상태로 지난 밤 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보희를 곁에서 본 문희가 이유를 물었다.

그저 얼굴만 붉히는 보희.

묻기를 여러 차례,

그래도 입을 열지 않는 언니 보희에게 다그치기까지 했다.

그제야 수줍음 감추지 못하고 지난 밤 꿈 이야기를 했다.

언니 보희의 꿈 이야기를 들은 동생 문희는 그 꿈을 자신에게 팔라 했다.

어찌 꿈을 팔고 사느냐?

얄궂다는 말로 얼버무리려는 언니에게 동생 문희는 정색을 하며 팔라 했고

자신이 평소 아끼는 비단 치마로 값을 매겨 언니에게 들려주었다.

그런 문희는 언니가 꾼 꿈은 이제 내꺼야 란 몇 차례 말로 다짐을 했다.

때에 유신은 김 춘추와 가까이 사귀고 있었다.

둘은 매일 어울렸다.

그날도 둘은 유신의 마당에서 축국(공놀이로 오늘날의 축구와 비슷하다.)을 즐겼다.

격하게 몸을 부딪다 보니 어쩌다 김 춘추 저고리의 옷고름이 떨어졌다.

유신이 춘추에게 말했다.

옷고름 떨어진 저고리를 입고 있는 그대 보기가 좋지 않으니 달아 드리도록 하리다.

유신은 춘추를 안채로 안내했다.

안채에는 유신의 두 누이가 있었다.

유신은 먼저 보희에게 춘추의 옷고름을 달아 줄 것을 지시했다.

보희는 오빠의 말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보희의 성격으로 다 큰 처녀가 외간 남자의 저고리 옷고름을 달아준다는 게

마음 내키지 않은 것이다.

이때, 곁에 있든 문희가 성큼 나서서 그 옷고름 내가 달아 주겠노라 했다.

말 끝나기 무섭게 방에서 반짓고리를 내 와 김 춘추에 다가갔다.

지금과 달리 그 시대는 내복 같은 게 없었고 계절에 따랐는지 저고리를 입은

채로 떨어진 옷고름을 달았다.

저고리 옷고름 떨어져 약간 드러난 김 춘추의 가슴은 한껏 젊음을 발산하고 있었다.

달련된 근육은 처녀 문희로 얼마나 믿음직하게 보였을까!

그런 문희였지만 약간의 주저도 없이 떨어 진 옷고름을 달아주었다.

장난끼 어린 문희는 끝에 가서 바늘 끝으로 김 춘추의 가슴을 살짝 찔렀다.

흠칫, 약간의 경련을 한 김 춘추는 순간 처녀 문희의 체취가 전신에 스며들었다.

역사서는 문희의 미모는 경국지색에 버금갈 정도였다 한다.

김 춘추와 문희는 정분이 나게 되었다.

김 춘추는 매일 김 유신의 집을 찾았고 그때 마다 문희를 만나고는 했다.

김 유신은 노발대발했다.

문희가 임신을 한 것이다.

혼전임신 인 것이다.

상대 남자는 말 할 것도 없이 절친 김 춘추였다.

김 춘추에게 연통 할 것도 없었다.

그는 유부남이었다.

이미 결혼하여 본처로 보냥궁주가 있었고 부부 사이는 각별했다.

그런 김 춘추였기에 문희의 임신에 이렇다 할 대처를 못했다.

김 유신은 누이 문희를 가문의 수치라며 불태우겠다 소리쳤다.

김 유신이 혼전임신을 한 누이 문희를 불에 태워 죽인다더라는 소문은

온 서라벌에 퍼졌다.

정월 대보름 저녁,

김 유신은 마당에 몇 짐 장작을 쌓아 놓고 오늘 저녁에 문희를 태운다 소문을 냈다.

때에 여왕 선덕이 시종과 몇 몇 신료를 거느리고 남산에 올라 달구경을 하고 있었다.

여왕의 눈에 서라벌 어느 한 곳에서 화광이 충천한 게 눈에 들어왔다.

마치 집 한 채가 불에 타는 것 같은 큰 불길이었다.

여왕은 대체 저 불이 무슨 불인가 물었다.

신료 중 하나가 아뢰었다.

김 유신에게 혼전임신을 한 누이가 있어 가문의 수치라며 불에 태워 죽인다 하옵니다.

아니,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찌 누이를 불에 태워 죽일 수 있는가?

대체 애 아비는 누구인가?

그 자리에 김 춘추도 자리를 같이 하고 있었다.

신료들이 아뢰었다.

여기 있는 춘추 공이옵니다.

뭐라?

고개를 돌린 여왕의 시선이 김 춘추에게 닿자 붉어 진 얼굴에 몸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어찌 혼전임신이라 해도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여왕은 김 춘추에게 명했다.

춘추 공은 속히 달려가 김 유신에게 전하라

여왕의 명이니라. 김 유신은 누이 불태우려는 일을 멈추고 김 춘추와 문희를

혼인 시키도록 하라

김 춘추가 김 유신의 집에 당도했을 때 다행히 문희는 무사했다.

무사할 뿐만 아니라 결박도 당하지 않은 채 방안에 언니 보희와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세월이 흘렀다.

신라 27대 선덕여왕에 이어 28대로 진덕여왕이 보위에 올랐지만 대가 끊겼다.

성골출신 왕이 대를 이을 수 없게 되자 진골출신 김 춘추를 29대 왕으로

선위한다.

이래, 왕이 된 김 춘추가 태종 무열왕이다.

본부인 보량궁주가 젊은 나이게 죽고 문희가 왕후의 자리에 앉게 되니 문명왕후이다.

무열왕과 문명왕후 사이에 태어 난 이가 법민으로 신라 30대 왕으로 문무왕이다.

무열왕의 뒤를 이은 문무왕은 명군으로 외세를 몰아내고 통일국가의 기반을 다진다.

김 유신과 김 춘추, 그리고 문희의 얘기는 역사서에 사실로 기록되고 있다.

문희를 가운데로 김 유신과 김 춘추는 처남 매제로 엮여 삼국을 통일한다.

다양한 평가는 그만 두고 나는 단재(신 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김 유신을 평한 것을

기억하고자 한다.

어떤 이들은 김 유신을 을지문덕이나 강 감찬, 이 순신의 반열에 올려놓고 통일 삼국의

주역으로 띄울지 모르지만 단재는 권모술수(문희)로 입지를 다지고 이 민족(당) 군대를

끌어들여 외세에 의한 통일을 이루었다는 점을 들어 폄하하고 있다.

나 역시 몰락한 왕조(가락)의 후예 김 유신이 의도적으로 김 춘추와 사귀고 누이

문희를 접근시켜 유혹케 한 것은 지모(사전적 의미로 슬기로운 계책)가 아닌 간계

(간사한 꾀)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다.

보희의 꿈과 이 꿈을 사고 판 자매의 얘기는 후세인들이 가미했다 하더라도 나머지

일련의 사건들은 김 유신의 계획과 의도에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손을 들어 준다.